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디낭 포슈 (문단 편집) ==== 당시 북부전선의 상황 ==== || [[파일:attachment/페르디낭 포슈/belg_at_antwerp.jpg|width=400]] || || [[앤트워프]](Antwerp) 요새에서 항전하는 벨기에군 || 1차 마른 전투에서 포슈가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한들 아직 경력이 후달림에도 북부집단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유는 북부 전선의 복잡한 상황이 한몫을 했다. 순수 프랑스군으로 구성된 중부와 달리 북부는 [[벨기에군]]과 [[영국군]] 등 타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국경 전투]]에서 제5군의 지휘관 샤를 랑르작(Charles Lanrezac)이 번번히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 존 프렌치와 격돌했던 것과 달리 포슈는 헨리 윌슨과의 인연으로 대표되듯이 프랑스군 지휘부에서 영국군을 가장 많이 경험해 봤다. 프랑스군 본부의 영국대표 시드니 클라이브(Sidney Clive)만 해도 포슈를 프랑스군에서 가장 유능한 장군으로 평가했다. 게다가 북부의 군사적 상황 또한 복잡했다. 영국군 총사령관 프렌치는 해협에 가까이 배치되길 요청했으며 벨기에군의 경우에는 점차 안트베르펜에 관심을 두는 독일군의 공세를 맞섰다. 조프르는 벨기에군이 안트베르펜 요새를 버리고 전선을 물리기를 요청했지만 정작 인근의 프랑스군은 독일군에게 왼쪽 측면이 노출된 상황이었다. 이 복잡한 상황을 풀어내기 위해선 조프르와 가믈랭은 포슈 같이 타군과의 경험이 많으며 전의가 넘치는 지휘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슈는 프랑스 장군 중 국제적인 경험이 가장 많은 인물이었으며 전쟁 말기인 1918년에도 마찬가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